dylayed

개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아빠가 된 개발자

육아가 가져온 일, 삶, 행복의 재정의

아이를 가진 동료는 금방 티가 납니다. 휴대폰 배경화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주말에 뭐했냐는 질문에 대한 답만 들어도 알 수 있죠.

제 소개만 봐도 그렇습니다. ‘두 아이 아빠’라는 말이 늘 따라붙습니다. 아이를 맞이한 것은 제 인생 가장 큰 사건이니까요. 과거의 이민, 첫 직장, 결혼 같은 굵직한 사건들도 육아 앞에선 작게 느껴집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은 행복 그래프를 롤러코스터로 만듭니다. 아이를 만나기 전 비교적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는데, 이젠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갑니다. 특히 첫 아이가 신생아였을 땐 잠을 못 자고, 하고 싶은 걸 포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아내와 눈을 맞추며 “우리 망했다” 싶었던 아이와의 첫날 밤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Y Combinator 공동창업자 Paul Graham은 에세이 “Having Kids” 에서 아래와 같이 고백해했습니다:

“아이를 가지면 야망이 줄어들 수 있다 (having kids may make one less ambitious)”

절대적인 시간과 에너지 부족으로 개인적 성취감이 줄어드는 건 때로 고통스럽습니다. 저 역시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육아를 단순히 ‘행복’의 가성비로 따지는 건 어딘가 맞지 않습니다. 아이가 주는 행복의 상한선은 상상 이상입니다. 아이가 처음 다리에 힘을 주고 한 걸음을 뗄 때, 아이와 해변에서 함께 웃을 때 느끼는 충만함은 이전의 어떤 경험과도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살고 있었구나” 같은 벅찬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옵니다. 소소한 일상 속 행복이 보석처럼 박혀 있습니다.

야망이 줄었다기보다, 그 방향이 바뀐 것 같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세상을 바꾸는 유능한 기술자’나 ‘엄청난 부자가 되는 것’ 대신, ‘이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되기를’, ‘우리 가족 아프지 않기를’, ‘더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같은 소망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소박한 바람들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지도 잘 압니다.

‘부모가 되는 건 인간에서 뱀파이어가 되는 과정’이라는 비유를 좋아합니다. 육아를 시작하며 이전의 욕망과 에너지는 소진되지만, 부모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무장하고 인생 2막을 시작합니다. 가끔은 아이 없던 ‘인간’ 시절의 제가 그립고, 아직 아이 없는 친구들을 보면 제 순수했던 시절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만, 부모가 된 ‘뱀파이어’의 삶도 나름대로 좋습니다.

이 새로운 관점은 일상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예전엔 ‘시간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이라 넘겼던 영화 <어바웃 타임>을 부모가 된 후 보고 오열하기도 하고, 회귀물 웹소설을 보며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면 애 생각만 날 텐데?’ 하는 엉뚱한 몰입을 하기도 합니다. 이전엔 보이지 않던 세상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생각해보면 사회의 많은 구성원이 누군가의 부모입니다. 동료, 매니저, 임원 중 상당수가 누군가의 아빠이자 엄마, 즉 저와 같은 ‘뱀파이어’들입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 가장 활발한 이메일 그룹 중 하나가 바로 ‘New Parents’입니다. 실리콘밸리의 긴 육아휴직 같은 제도를 보면, 이 변화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이해하게 되고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 변화는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닌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인생의 한 장임을 느낍니다.

결국 아이는 나의 행복에 대한 정의 자체를 바꿉니다. ‘나의 행복’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으로 중심이 이동합니다. 가장 큰 변화는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하고 사랑하는 존재가 삶에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해 겪는 삶의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부모가 되는 걸 추천하냐 질문을 받곤 합니다. 글쎄요. 저에게 부모가 된다는 건 추천의 영역을 넘어선 경험입니다. 마치 나이 드는 걸 추천하냐 묻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맞이한 건 저희 부부의 선택이었지만, 돌아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도 우리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